국어 선생님 (06. 06. 29) 옛글모음(2006.05-2011.10)

뉴스 비평

고3때 일이다. 대학입시를 문턱에 둔 우리는 항상 피곤했다. 밤 늦게 까지 학교에 '잡아두는' 대입 맞춤형 학교 정책때문이었다. (7시 20분까지 등교를 해야 했고, 새벽 2시까지 야간자율(?!)학습을 해야만 했다) 수업시간 때면, 학생을 깨우려는 선생님과 그 선생님의 참견을 피하려는 졸린 학생들 사이에 갈등이 흐르곤 했다. 누구는 뺨을 맞기도 했고, 누구는 등을 얻어 맞기도 했다. '다 너희를 위해서 하는 일이다'라는 사족을 단 일들이었다.

국어 시간이었다. 어느 학교나 그렇듯 학생들 사이에 선생님에 대한 호오는 우리학교에도 있었다. (김규항이 말했듯 선생님들의 별명은 그저 별명이 아니다. 만약 '개세끼'라는 별명의 선생님이 있다면 그건 학생들이 그 선생님에게 평소 느꼈던 감정적인 분노를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. 당연히 비난의 화살은 학생에 향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선생님의 평소행실에 초점이 맞춰줘야 한다. 이말에 100% 동감한다) 국어선생님은 항상 어딘지 모르게 피곤한 모습으로 다니셨고, (국어선생님 답게!) 책을 항상 읽고 다니시곤 하셨다. 후에 들은 이야기로는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책이 너무도 많아 밤늦게 책을 읽다보니 항상 피로함을 느끼신단다.

나와 주위 친구들은 국어 선생님을 일제시대에 시대를 고민하는 '인텔리'라며 우스개 비슷하게 이야기 하곤 하였다. 친구들 사이에서 국어 선생님이 호감을 얻게 된 것은 다름 아니라 그저 '선생님' 다웠기 때문이다. 누구처럼 그저 답안지를 읽어주는 '교육'이 아니라 하나하나 생각을 하게 하여 이해를 시켜주시곤 하였다. 가끔 (답이 하나라고 나온 문제에) 답이 두 개가 될 수도 있다며 이런저런 설명을 곁들어 주셨다. 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'평범함'이 국어선생님을 우리들 사이에서 '비범한' 선생님으로 만들어 놓았다.

그러던 어느 날. 선생님이 들어오시곤 교실을 한 번 훑으셨다. 옆 친구의 등살에 잠에서 깨어나는 아이들, 그냥 무시하고 단잠을 즐기는 아이들, 피곤하게 책을 펴는 아이들, 그게 교실의 모습이었다.

"내가 퀴즈 하나 낼 테니까, 이거 맞추면 아이스크림 돌린다"

선생님의 말씀이셨다. '깨어나는' 아이들은 호기심에 다들 선생님을 주목하였다. 선생님은 말씀을 맞치고 칠판에 그림을 그리셨다. 새장에 갇힌 새의 그림이었다. 새장에는 조그만 문도 그리셨다.

"어떻게 하면 이 새가 하늘로 날아갈 수 있을까?"

이런 저런 답들이 쏟아졌다. 가령,

"칠판 지우개로 새장을 지우면 됩니다."

"칠판 지우개로 새장의 문을 열어주면 됩니다"

"새장을 지우고 새가 날개를 편 것으로 고쳐 그리면 됩니다."

"칠판 위 새장은 평면이니까, 뒤로 돌아 날아가면 됩니다"

이런 것들이었다. 국어 선생님은 '이것은 난센스퀴즈가 아니다'라고 단호히 말씀하셨고, 우리들은 그저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하였다. 그러고 몇 명의 아이들이 정답에 도전하였지만,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. 수업종이 울리고서야 우리는 그 정답을 알 수 있었다. 그 답은 참 허무했지만, 시간이 지날 수록 그 말이 기억에 남는다. 가끔 난 그 생각을 하곤 한다. 더욱이 학교관련 문제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될 때, 난 국어 선생님을 떠올리고 그 정답에 대해서 생각한다. 그 정답은 다음과 같다.


"새 스스로가 갇혀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.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새장문을 열어주고, 새장을 없애줘도 이 새는 날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. 갇혀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, 새는 자유를 갈망할 것이고 그때서야 비로소 새는 새장을 떠나 하늘을 자유롭게 날 수 있다."  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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덧글

  • Andrea 2006/06/29 09:07 # 답글

    멋진 선생님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고 계시군요...
  • 戮屍 2006/06/29 09:31 # 답글

    정말 정답이군요..
  • marlowe 2006/06/29 13:01 # 답글

    진짜 선생님도 분명 있지요. 학교 밖으로 드러나지않았을 뿐, 학생들은 다 압니다.
  • 휴지 2006/06/29 13:54 # 답글

    오랜만에 갈증을 해소하고 갑니다.
  • 이중인격 2006/06/29 14:40 # 답글

    정말 멋있는 분이시네요...
  • 소아나 2006/06/29 20:18 # 답글

    미친 듯이 멋집니다. 우왓.

    "새 스스로가 갇혀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.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새장문을 열어주고, 새장을 없애줘도 이 새는 날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. 갇혀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, 새는 자유를 갈망할 것이고 그때서야 비로소 새는 새장을 떠나 하늘을 자유롭게 날 수 있다."

    ㅠ_ㅠb
  • JAWOON 2006/06/29 21:42 # 답글

    멋진 선생님이시네요 :)
  • kirhina 2006/06/30 00:36 # 답글

    최고로 멋졌습니다. 정말 존경받을만한 분이시네요.
  • 즈나캇세 2006/06/30 00:41 # 답글

    좋은 분을 만나셨군요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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